돈과 마초주의가 미국을 좀먹고 있다 (원문: 2026년 6월 9일)
취약한 MAGA의 자존심이 에너지에서 드론에 이르기까지 미래를 거부하고 있다
드론은 현대전을 급속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보급이 잘 이루어진 군대인 미군은 이란에 의해 굴욕을 당했는데 이는 상당 부분 이란이 값싼 드론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해운, 에너지 생산, 심지어 미군 기지까지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드론전에서 점점 더 우위를 키워가며 러시아를 상대로 점차 우세를 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극우 세력이 푸틴의 마초적 과시와 그가 지닌 것으로 여겨졌던 군사적 무적성을 찬양했다는 점을 기억해 보십시오.
이처럼 급격한 상황 변화가 일어난 만큼,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드론 협정을 맺어 그 기술과 전문성의 혜택을 얻는 데 적극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더 힐』은 도널드 트럼프가 그러한 협정 체결을 질질 끌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미국 군사 분석가들은 그 지연을 이해하지 못하겠고 “어리둥절하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속마음을 숨기고 있으며, 명백한 사실을 말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국의 국익에 분명히 도움이 될 협정을 트럼프가 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그 명백한 이유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겉보기에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드론에 대한 반감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제로 잠시 우회해 보겠습니다. 바로 이 행정부의 재생에너지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석탄 산업을 되살리려는 절박하고도 실패할 수 밖에 없으며 낭비적인 노력입니다.
한때는 “시추하라, 더 시추하라”라는 구호가 현실적이고 냉철한 입장으로 포장될 수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혹시 체니 에너지 태스크포스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태양광, 풍력, 그리고 배터리 비용이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배터리는 해가 항상 비추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항상 부는 것도 아니라는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는 전기를 생산하는 가장 비용 효율적인 방식이 되었습니다. 반면 석탄은 완전히 경제성이 없습니다. 다음은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가 추산한 2025년 전력 설비 증설 전망입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막으려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시 권한까지 발동해 7억 달러를 투입하여 “깨끗하고 아름다운” 석탄을 사용하는 신규 발전소에 보조금을 지급하려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의 일부는 거대한 자금에 있습니다. 화석연료 업계는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가장 큰 후원 세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코크 형제를 비롯한 여러 세력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의 정치 제도를 부패시키고 약화시킨 결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연방대법원도 분명히 포함됩니다. 반(反)재생에너지·친(親)화석연료 정책은 그들에 대한 보상이며, 투표권법의 무력화와 프로젝트 2025의 채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청정에너지가 문화전쟁의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석탄을 채굴하고 태우는 일은 “남성적인” 활동으로 여겨지는 반면, 재생에너지는 깨어 있는(woke) 이념과 여성스러움의 상징으로 묘사됩니다. 진짜 사나이는 진폐증이나 대기 중 미세입자는 물론 기후변화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결국 거대 자본과 취약한 남성적 자존심이 결합하여 이른바 ‘그린 광기 증후군(Green Derangement Syndrome)’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란 사태와 그 재앙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우크라이나로 눈을 돌리기를 거부하는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드론이 러시아를 상대로 거둔 분명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왜 이란의 드론 위협에 그토록 무방비 상태였을까요? 탐사보도 기자들이 이 문제를 파헤친다면, 저는 그들에게 자금의 흐름을 추적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미국에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거대한 방위산업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산업이 의존하는 여러 기술은 빠르게 구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년의 제작 기간이 필요한 400만 달러짜리 패트리엇 미사일이, 불과 3만 5천 달러에 불과하며 몇 달 안에 생산할 수 있는 샤헤드(Shahed) 드론을 격추하는 데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방위산업의 이해관계가 전쟁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이는 마치 화석연료 기업들이 에너지 기술의 새로운 현실에 맞서 지속적으로 로비를 벌여온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국 드론 운용에 능숙한 우크라이나와 협력하게 되면 미국 방산업체들로 흘러가는 돈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추측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전쟁에서 일어나고 있는 드론 혁명을 인정하려면 자신들이 품고 있는 마초적 군사력 환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유능한 장교들, 특히 흑인과 여성 장교들을 군에서 축출해 왔습니다. 그러나 충성심 검증을 넘어 그는 “전사 정신(warrior ethos)”과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마치 드론과 전자전의 시대에 첨단 군대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를 지휘하는 것처럼 행동해 왔습니다.
사실 헤그세스는 아마도 이란 사태에서의 처참한 실패로 인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듯하며 — 그는 대체 왜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걸까요? — 최근 미국이 우크라이나로부터 교훈을 얻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전쟁관 전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남성성과 권력의 상징으로서 거대하고 값비싼 무기를 사랑합니다. 현대전에서는 손쉬운 표적에 불과할 텐데도 그는 여전히 초대형 “트럼프급(Trump-class)” 전함 건조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은 미사일과 해상 드론을 이용해 한때 위용을 자랑하던 러시아 흑해함대를 요새화된 피난처에 숨어 지내도록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자신의 환상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배우는 것을 더욱 꺼립니다. 젤렌스키가 마땅히 얻은 영웅적 명성에 대한 질투와 분노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했다가, 결국 우크라이나가 패배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이 오히려 망신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우크라이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굴욕이 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와 드론 협정을 맺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전혀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국익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군사 전략에서나 에너지 정책에서나, 트럼프는 돈과 마초주의를 위해 미국을 배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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